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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농이의 일기/낙서장

한글창제와 창제반대세력

by 도농jk 2020. 8. 28.

갑자기 뚱단지같은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없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인

 

훈민정음을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그러자  많은 신하들이 이에 반대하며 상소를 냈는데

 

최만리가 대표가 되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새 글자 만들기를 반대하는 상소(1444)를 했다.  


첫째, 대대로 중국의 문물을 본받고 섬기며 사는 처지에 한자와는 이질적인 소리 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한자와 다른 글자를 가진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티베트) 등은 하나 같이 오랑캐들뿐이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이다. 

셋째, 새 글자는 이두보다도 더 비속하고 그저 쉽기만 한 것이라 어려운 한자로 된 중국의 높은 학문과 멀어 지게 만들어 우리네 문화수준을 떨어지게 할 것이다. 

넷째, 송사에 억울한 경우가 생기는 것은 한자를 잘 알고 쓰는 중국사회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며, 한자나 이두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관리의 자질에 따른 것이니 새 글자를 만들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섯째, 새 글자를 만드는 것은 풍속을 크게 바꾸는 일인만큼, 온 국민과 선조와 중국에 묻고 훗날 고침이 없도록 심사 숙고를 거듭해야 마땅한데, 그런 신중함이 전혀 없이 적은 수의 사람들만으로 졸속하게 추진하고 있고, 상감은 몸을 헤쳐 가며 지나친 정성을 쏟고 있다. 
여섯째, 학문과 수도에 정진해야 할 동궁(문종)이 인격 성장과 무관한 글자 만들기에 정력을 소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세종 임금은 이에 대해서 세세히 답변하지는 않고, 설총이 백성의 글자 생활을 돕기 위해 이두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한글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탐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만드는 중대한 나랏일임을 먼저 밝히고, 다만 넷째 의견에 대해서 사리를 모르는 속된 선비의 생각이라고 비판하고, 
여섯째 의견에 대해서 한글의 중요함에 비추어 동궁이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많은 신하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나는 양반들의 기득권 보존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한자와 한문을 익힌 사람만이 양반,벼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조선왕조가 끝날 500년후 쯤에 되서야 "한글"이 재탄생 되었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절대 놓지 않으려고 한다.

 

수구적인 사고방식은 우리 자신을 우물속에 갇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아직, 아니 앞으로도 많은 최만리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타날것인데,

 

우리는 항상 그들을 경계해야한다.

갑자기 뚱단지같은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없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인

 

훈민정음을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

 

 

 

 

그러자  많은 신하들이 이에 반대하며 상소를 냈는데

 

최만리가 대표가 되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줄거리로 새 글자 만들기를 반대하는 상소(1444)를 했다.  


첫째, 대대로 중국의 문물을 본받고 섬기며 사는 처지에 한자와는 이질적인 소리 글자를 만드는 것은

중국에 대해서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한자와 다른 글자를 가진 몽고, 서하, 여진, 일본, 서번(티베트) 등은 하나 같이 오랑캐들뿐이니,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것은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일이다. 

 

셋째, 새 글자는 이두보다도 더 비속하고 그저 쉽기만 한 것이라 어려운 한자로 된 중국의 높은 학문과 멀어 지게 만들어 우리네 문화수준을 떨어지게 할 것이다. 

 

넷째, 송사에 억울한 경우가 생기는 것은 한자를 잘 알고 쓰는 중국사회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며,

한자나 이두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관리의 자질에 따른 것이니

새 글자를 만들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섯째, 새 글자를 만드는 것은 풍속을 크게 바꾸는 일인만큼, 온 국민과 선조와 중국에 묻고 훗날 고침이 없도록 심사 숙고를 거듭해야 마땅한데, 그런 신중함이 전혀 없이 적은 수의 사람들만으로 졸속하게 추진하고 있고, 상감은 몸을 헤쳐 가며 지나친 정성을 쏟고 있다. 


여섯째, 학문과 수도에 정진해야 할 동궁(문종)이 인격 성장과 무관한 글자 만들기에 정력을 소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세종 임금은 이에 대해서 세세히 답변하지는 않고, 설총이 백성의 글자 생활을 돕기 위해 이두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한글도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탐해서가 아니라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만드는 중대한 나랏일임을 먼저 밝히고, 다만 넷째 의견에 대해서 사리를 모르는 속된 선비의 생각이라고 비판하고, 
여섯째 의견에 대해서 한글의 중요함에 비추어 동궁이 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많은 신하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나는 양반들의 기득권 보존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한자와 한문을 익힌 사람만이 양반,벼슬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조선왕조가 끝날 500년후 쯤에 되서야 "한글"이 재탄생 되었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절대 놓지 않으려고 한다.

 

수구적인 사고방식은 우리 자신을 우물속에 갇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아직, 아니 앞으로도 많은 최만리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타날것인데,

 

우리는 항상 그들을 경계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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